유아의 낙서는 소근육과 눈·손 협응, 인지가 함께 자라야 가능한 발달의 신호로, 2~4세 난화기에는 어디에 그려도 되는지를 아직 구분하지 못한다. 안전을 위협하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재료는 단호히 막되, 무독성·워셔블 도구로 정해진 면에 그리는 낙서는 허용하는 편이 낫다. 거실 벽 전지나 이젤처럼 그릴 자리를 정해주고 '여기는 돼' 규칙을 세우면 벽지도 아이의 표현도 지킬 수 있다.

아이가 벽에 그리기 시작하면 대개 급한 마음에 "안 돼"부터 나온다. 그런데 낙서는 말썽이 아니라 발달이 통합돼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색연필을 쥐는 손가락과 손바닥의 힘, 그것을 움직이는 소근육 조절, 종이에 대고 긋는 눈과 손의 협응이 모두 갖춰져야 가능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시기도 정해져 있다. 대개 12~13개월 무렵 손가락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서 끄적임이 시작된다. 미술교육 이론가 로웬펠드는 낙서가 왕성해지는 2~4세를 '난화기'로 보고 세 단계로 나눴다. 이 시기의 아이는 어디에 그려도 되고 안 되는지를 아직 구분하지 못한다. 벽에 그린 것은 반항이 아니라, 그릴 힘이 생겼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래서 접근을 바꾸는 편이 낫다. 완전히 금지하면 표현 기회를 뺏는 데다, 구분을 못 하는 시기라 야단쳐도 효과가 크지 않다. 문제를 '못 하게'가 아니라 '어디서'로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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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전부 허용하라는 뜻은 아니다. 안전과 관련된 선은 분명히 그어야 한다. 도구를 입에 넣거나, 콘센트·화기 근처에서 그리는 상황, 삼킬 위험이 있는 작은 부품이 든 도구는 단호히 막는 게 맞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독성이 있거나 지우기 어려운 유성 매직은 애초에 아이 손에 닿지 않게 둔다.
반대로 발달상 자연스러운 끄적임 자체는 굳이 막을 이유가 없다. 무독성에 물로 지워지는 도구로, 정해진 면에 그리는 낙서라면 허용해도 되는 쪽이다.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아이가 다치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결과가 남는가. 그렇지 않다면 막기보다 방향을 잡아주는 편이 낫다.
핵심은 낙서를 없애는 게 아니라 '해도 되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거실 벽이나 아이 방 한쪽에 큰 전지를 붙여두거나 스케치북을 늘 펼쳐두면, 아이의 그리기 욕구가 갈 곳이 생긴다. 종이는 큰 것이 좋다. 작은 공간에서는 팔을 크게 움직여 의도대로 긋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구는 안전과 뒤처리 두 가지로 고른다. 무독성 크레용이나 물로 지워지는 워셔블 제품이면 벽에 조금 번져도 물에 희석한 중성세제를 스펀지에 묻혀 닦아낼 수 있다. 이젤이나 벽면 화이트보드처럼 마음껏 그리고 지울 수 있는 도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집에 칠판이 있던 아이들이 읽기와 쓰기에 더 흥미를 보였다는 관찰도 있다.
그다음은 규칙이다. "여기는 돼"라고 그릴 수 있는 면을 분명히 정해주면, 다른 곳에 그리는 행동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줄어든다. 도구를 고를 때 확인할 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막는 데 드는 에너지를 자리 만드는 데 쓰면, 벽지도 지키고 아이의 표현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