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비약과 처방약을 한 상자에 몰아넣으면 습기와 열, 뒤섞인 유통기한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못 쓰는 약이 생긴다. 알약·물약·연고는 개봉 후 사용기한과 적정 보관 온도가 달라 자리를 나눠 두는 것이 먼저이고,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은 손 닿지 않는 높이가 관건이다. 개봉일을 적어 두는 습관과 지난 약을 폐의약품으로 배출하는 원칙만 지켜도 약상자가 깔끔해진다.

상비약과 처방약을 한데 모으는 것 자체는 좋은 습관이다. 문제는 형태가 다른 약을 구분 없이 한 칸에 쌓아 둘 때 생긴다. 습기와 열에 약한 알약, 개봉하면 금세 상하는 시럽, 차가우면 굳는 연고가 같은 조건에서 뒤섞이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손해를 본다.
먼저 알아둘 기본은 보관 환경이다. 약은 직사광선을 피하고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둬야 한다. 습기는 알약 코팅을 녹이거나 가루약을 뭉치게 만든다. 그래서 습기 찬 화장실 선반이나 열이 오르는 가스레인지 주변은 약 수납 장소로 맞지 않는다.

Juan Pérez Gallego
약은 형태에 따라 개봉 후 쓸 수 있는 기간과 알맞은 온도가 다르다. 이 차이를 기준으로 칸을 나누면 정리가 훨씬 수월해진다.
| 제형 | 보관 | 개봉 후 사용기한 |
|---|---|---|
| 알약 | 실온, 건조한 곳 | 6개월~1년 |
| 물약·시럽 | 실온(냉장 표시 시만 냉장) | 약 1개월 |
| 연고 | 실온(차게 두지 않기) | 6개월~1년 |
대부분의 약은 실온 보관이 원칙이다. 여기서 실온은 1~30도를 뜻한다. '냉장 보관'이라고 적힌 일부 항생제 시럽이나 인슐린만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를 습관처럼 냉장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시럽은 차게 두면 성분이 엉겨 침전물이 생길 수 있고, 연고는 굳어서 잘 발리지 않고 피부 흡수도 떨어진다.
반대로 열은 어떤 약에도 해롭다. 여름철 자동차 안이나 창가는 내부 온도가 40~50도까지 올라 약을 변질시키므로 피해야 한다.
제형별 정리가 끝나면 위치를 정한다.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에서는 보관의 첫 기준이 온도나 습도보다 '손이 닿는가'다. 알록달록한 알약이나 달콤한 시럽은 아이에게 사탕처럼 보이기 쉽다.
그래서 약 수납함은 아이 눈높이보다 확실히 높은 곳, 서랍이라면 잠금이 되는 칸에 두는 편이 안전하다. 반려동물은 낮은 서랍이나 가방 안에 둔 약봉지를 뜯기도 하므로, 바닥 가까운 수납은 피한다. 연고나 물약은 개봉 후 뚜껑을 꼭 닫아 밀봉해 두는 것만으로도 오염과 사고를 함께 줄일 수 있다.
약상자가 어질러지는 진짜 이유는 유통기한이 제각각인데 겉만 봐서는 언제 열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은 단순하다. 약을 개봉한 날짜를 상자나 병에 유성펜으로 적어 두면 된다. 표에서 본 제형별 사용기한을 개봉일에 더하면 언제까지 쓸 수 있는지가 바로 나온다.
여기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반년에 한 번 정도 약상자를 통째로 점검하는 날을 정해 두면 관리가 끊기지 않는다. 점검하다 기한이 지난 약이 나오면 일반 쓰레기로 버리면 안 된다. 약 성분이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약은 이렇게 배출한다.
이렇게 모은 폐의약품은 약국이나 보건소, 행정복지센터의 회수함에 넣으면 된다. 지역에 따라 우체통 회수함이나 전용 회수봉투를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가까운 배출 창구를 한 번 확인해 두면 다음부터 망설일 일이 없다.